# '강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조차 사치이며 죄스러워야 했던 세대' 라고, 공지영 작가는 80년대 대학을 다닌 요즘 386이라 불리우는 세대를 칭한다. 나는 잘 모른다. 그 세대가 아니니깐... 그보다 20년 정도는 뒤에 대학을 다녔고, '민주화 운동'은 내겐 그냥 역사이고 드라마이다. 그 시대의 선배들은.... 고맙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세대가 아닌게... 현실을 외면하는 비겁함, 죄책감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다는게....
# 이 책은, 그 시절의 중심부에 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80년대 험악하지만 아름다웠던 민주화 투쟁의 결실이, 독재 세력과 민주화의 한 축간의 결탁 혹은 야합 혹은 화해로 이루어진, 어쩌면 너무 모순적이고 허망한 결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 이야기이다. 그리고, 비겁하고 야비한 현실에 저항하면서도 비겁하고 야비했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 주인공 명우는 비겁하다. 자신의 감정을 책임질 수 없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구실은 그럴듯 하다. 사회적 상식에, 상식적인 도덕에 충실한 결과이다. 이 주인공은.... 왜 이렇게 나와 닮았을까...
# 어느 정도 비겁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상처 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그러자나.... 어리니깐.... 그렇다고 치자. 근데 이제 더 이상은 그러면 안된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더 이상 비겁해도 안되고, 숨을 수도 없다는 걸. 지금은 그게 나쁘다는 걸 아니깐. 그래서 이제는 진짜 나쁜 짓이 되버리는 거다.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건....
# 기대 없이 읽었는데도, 정말 쉽고 재밌게 읽었다. 공지영씨는 정말 글을 잘 쓰는 듯... 우행시나 즐거운 나의 집이 생각보다 임펙트 없고 뭔가 알수 없는 거부감이 있었던 데에 반하여 훨씬 이전에 쓴 이 책은 그런게 전혀 없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좋아진다.
# 운동권 인사에서 더러운 브루주아의 자서전 대필가로 변절한 주인공에서도 묘하게 나를 느낀다. 순수한 정의를 갈구하다가 현실 적응, 대의, 공리주의 등의 개소리 핑계를 대며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흐려진 가치관을 가지게 된 내가 보인다. 물론, 소설속 주인공처럼 용감하게 내가 뭔 행동을 한건 쥐뿔 없고 머리속으로만 생각한거지만....
# "이제 와서 어리석었다고 그 세월 전체를 매도하는 인간들...." 이 문구를 읽으니깐 바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정치거물이신 누구...
# 무거운 책 읽기 싫었는데, 상실의 시대 읽고 나서 서울에서 읽을 책이 없어 본게 또 이런 무거운 책이 되어버렸네. 그치만 정말 좋았다. 이 책 주인공들이 느낀 죄책감, 20대 초반 나도 조금은 느꼈던 그 기분, 삶을 너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나만 행복해져도 되는가에 대한 원죄적 죄책감... 그 걸 갚으러면 역설적으로 삶을 충실하게, 확실하게 즐기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이 가진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