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의 파견 생활을 끝내자, 그 전과는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이 전에 있던 죄의식 같은 것이 많이 제거된 느낌. 마치, 몸 속의 종양을 도려내듯.. 그렇기에 재발의 위험과 불안은 안고 있지만...
그 구원을 얻게된 것은 아무래도 부지런함 때문인듯 했다. 짧은 시간 동안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계속 약속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듯.
# 아침에 출근할 때, 직진 차량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우회전으로 차선에 합류하던 차 때문에 사고가 날뻔 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올해부터 절대 사고를 내지 않겠다고 각오를 해서인지 더 격양되어간다. 그러나, 역시 양보하려 했으면 위험한 순간도 없었을 것을 순간 깨닫는다. 내 탓이오!
# 시계가 왔다. 생각만큼 좋은 기분은 없다. 보증서에 문제가 있어 처리 방법이 고민됐다. 인터넷으로 구매했는데, 구입처에 전화를 했더니 착오가 있다며 보증서만 다시 보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인데 기분이 몹시 상함을 느낀다. 계획이 흩으러졌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해 백화점에서 시계줄을 줄이면서 정품인 것도 확인하려 했는데, 보증서의 부재로 계획이 틀어졌다. 보증서만 보낼 것인가, 시계줄은 백화점이 아니라 일반 시계점에서 고쳐야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문득 서울에 오늘갈 필요성이 없다는 걸 깨닫고 예약해 둔 열차를 취소한다. 그리고 결혼식 전에 서울에 도착하기 위해 열차 시간을 이리저리 맞추다가 결혼식이 내일이 아니라 다음주인 걸 친구에게 듣는다. 허탈하다. 내일 계획이 없어졌다. 부랴부랴 다른 친구와 약속을 잡아보려했지만, 쉽지 않다.
# 토요일엔 다들 약속이 있다. 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지 매주 토요일마다 약속을 잡는게 참 힘든데, 친구들은 누군가를 잘도 만난다. 하긴, 생각해보면 친구들 중에도 인기있는 애들은 꼭 있다. 공통점은 착하다는 건데, 내가 착하진 않지... 특히 친한 친구들한테는...
# 오늘 시계 사태를 겪으면서 또 한번 깨닫는 건데, 난 생각해둔 계획이 틀어질 때 가장 짜증이 심해지는 것 같다. 뭐 운전하다 막히거나 주차할 때 없을 때도 그렇지만.....
# 집에 있으면 도저히 집중이 안될것 같아, 저녁도 적당히 때울 겸 카페베네에 가 책을 읽는다. '지식의 재발견'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다 읽으면 뿌듯할거 같다. 너무 깊지 않고 넓게 인류의 역사, 과학, 종교를 다룬다. 지식에 접근하고 설명하는 작가의 태도가 마음에 쏙 든다. 피상적으로 알던 것들이 조금이나마 이어지고, 교과서에서 시험을 위해 외우던 'Fact' 들이, 이야기로 머리에 들어오니 뿌듯하다. 이런 것들이 지적 허영심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같은 시간을 다른 것들을 하는 것보다 마음이 뿌듯하다. '뿌듯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것들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스스로를 '별로 유능하지 못한' 과학자로 여기는 내 상태에서는 이 정도면 준수하다. ㅎ 좀 씁슬하구만...
# 남은 오늘의 최대의 숙제는! 내일 뭐할 것인가